비단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걸레는 하루도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니 나는 기꺼이 우리 민족을 위한 걸레가 되겠다.
You can live without silk, but you cannot survive a single day without rags.
Therefore, I am willing to become a rag for the sake of our people.

1881년, 손정도는 유학자이자 부농 출신의 아버지와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일을 도맡아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이 된 후 관직 시험을 위해 고향을 떠나 한 목사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고, 목사의 전도로 개신교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 길로 관직을 포기하고 목회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며 자주 가던 교회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민족 의식을 익히며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초석을 닦게 됩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나자 어려운 상황에 처한 때일수록 정신적으로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목회 활동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서게 됩니다.

이후에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가들과 더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같은 처지에 놓인 중국인들에게도 선교 활동을 벌이고, 중국 내 한인사회의 민족의식 고취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제의 감시가 점점 심해지자 위장 이주를 통해 감시망을 피했고, 파리 강화 회의에 밀사를 파견, 국제연맹 특파원 파견 등 국제 사회에 한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임시의정원 조직을 발의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됩니다. 손정도는 여기서 임시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하며 독립자금 모금과 활용에 대한 법안 가결 등, 원활한 독립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임시정부를 운영하였습니다.

임시정부 활동을 그만둔 이후에도 만주에 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2세들의 교육, 민족교육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수많은 핍박과 감시를 이겨낸 성직자 손정도,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손정도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