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There is no doubt Korea will achieve independence from Japan.

“상해에서 안동현까지는 이륭양행(怡隆洋行) 배편을 이용하였다. 이것은 아버님과 남편이 상해에 갔을 때도 이용했던 선편으로 임시정부와 국내를 잇는 주요 통로의 하나였다” – 정정화 『장강일기』 중에서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책임졌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6번이나 국내에 잠입했던 여성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중국 안동(지금의 단동)에서 ‘이륭양행’의 배를 타고 상해에 도착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정정화를 비롯한 한국독립운동가들에게 배편을 제공한 이륭양행은 어떤 회사였을까요? 뜻밖에도 이륭양행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아닌,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가 중국 안동에서 운영하던 무역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쇼는 단순히 독립운동가들에게 배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이륭양행 2층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사무국을 설치하도록 하였고, 교통사무국의 모든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당시 안동의 교통사무국은 임시정부의 자금모집, 국내의 정보수집과 보고, 임시정부의 지령 전달, 독립운동에 참여할 인물 소개와 연락, 무기조달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는 쇼가 눈엣가시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던 중 1920년 7월 자신의 부인과 자녀를 맞으러 신의주에 온 쇼를 체포했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중국 내 영자신문과 런던 타임즈 등에 기사화되면서 반일감정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쇼는 4개월 후에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뒤에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지만 쇼는 여전히 한국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했습니다. 영국인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한 조지 루이스 쇼는 우리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지금 세계의 대세를 보라.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인도의 독립 역시 가까이에 존재한다. 다음에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대들이 만족할 만한 일은 멀지 않았다”
-조지 루이스 쇼가 독립운동가 김문규에게 한 말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조지 루이스 쇼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