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압박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
For oppressed people, their fists should be strong.

1923년 3월,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건너간 일본에서 학업을 수료했습니다. 그러나 9월 관동대지진으로 이듬해 귀국을 합니다. 당시 일본의 조선인 학살과 멸시를 기점으로 이상화 시인은 일제에 대한 강한 분노를 담아 저항의 불꽃을 불태웁니다.

1926년 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 6월호에 발표합니다. 당시 <개벽>지의 폐간 계기가 된 만큼 반골적 특성이 강한 작품이었고 시단으로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시는 한자어를 피하고 순한글을 사용하며 대표적인 민족 저항시의 백미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

1928년 “ㄱ당 사건” (당시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직)에 연루되어 다시 한번 피검,

교남학교에서 조선어와 영어를 무보수로 담당 및 후진 양성,

조선일보사 경상북도총국 경영 전담,

1934년 교남학교에 권투클럽 창설,

1937년 독립투사이자 자신의 친형인 이상정 장군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귀국 이후에 일본 경찰에 피검되어 고초를 겪게 됩니다.

다시 한번 교남학교에 복직을 하지만 직접 작사한 교가를 문제 삼아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춘향전> 영문 번역본과 국문학사 등을 기획하고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과거 일경의 고문과 지속적인 감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은 위암으로 1943년 4월 25일, 민족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광복을 맞이하고 3년 후인 1948년, 대구광역시 달성공원에 대한민국 현대문학 최초의 시비가 세워졌고 <나의 침실로>의 한 문단이 적혀 있습니다.

제 11행: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歲月)모르는 나의 침실(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게로.

「마돈나」는 ‘사랑하는 여인’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이는 ‘민족의 바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침실’과 ‘아름답고 오랜 거기’는 도달하고자 하는 공간이고 결국은 제목 <나의 침실로>처럼 대일항쟁기 당시에 억압받은 우리 민족이 바라는 영원한 곳이며 지향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광복을 보지 못한 이상화 시인의 꿈은 여전히 영원한 곳으로 도달하길 꿈꾸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문학 시비의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이상화.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이상화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