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해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했어요.
I learned to call wrong things wrong, and that’s what I did.

1929년 광주 지역의 학생들이 주도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전국의 학생들이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효정은 당시 경성 내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생으로, 서예와 글짓기에 소질이 있었으며 독립운동가 친척들의 영향으로 남다른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사들 다수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민족정신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기반과 더불어, 평소 일제의 탄압과 교육 정책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이효정에게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 항일운동은 자극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지역 내 학교들과 함께 동맹휴학,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이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배포합니다.

이는 일제경찰의 압박과 학교의 제지로 인해 만세운동이 무산될 뻔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효정을 비롯한 학생들의 굳은 의지로 인해 학교 운동장에서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로 인해 경찰서로 연행되는 등의 고초를 겪습니다.

이후에도 항일운동에 대한 이효정의 의지는 꺾이지 않고 민족주의 학습모임 ‘경성RS독서회’ 결성, 시험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하는 ‘백지동맹’ 등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독립운동을 할수록 일제의 탄압과 고문은 점점 더 심해졌지만, 여전히 독립에 대한 이효정의 의지는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이효정은 노동자, 학생 등 약자의 편에 서서 대한민국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이효정이 되어 그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