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
- 조선어학회 회원들에 대한 예심종결 결정문 -
조선어학회를 아시나요?
조선어학회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 우리 말글을 지키기 위해 한국어를 연구하고, 한국어사전을 편찬했던 단체입니다. 조선어학회는 주시경이 설립한 국어연구학회를 계승하여, 1921년 조선어연구회로 창립되었고,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편되었습니다.
대일항쟁기에 일제는 우리 말글을 모질게 탄압했습니다.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배워야 했고,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대대로 조상에게 물려받아 온 이름조차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이러한 탄압에 맞서 우리 말글을 지키기 위해 사전편찬 활동을 했습니다. 이는 또 다른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전국의 우리말 어휘를 수집하는 한편,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완성하였고, 1935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확정하고, 1940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확정하면서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하며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힘썼습니다.
*사정(査定) 조사하거나 심사하여 결정함.
하지만 일제는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한국어연구를 탄압하기 위해,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내란죄로 검거하여 재판에 넘기고 강제로 단체를 해산시켰습니다.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습니다. 기소된 사람 중 이윤재, 한징은 옥중에서 사망하였고, 재판에 넘겨진 12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 6개월, 정인승 · 정태진 징역 2년, 김법린 · 이중화 · 이우식 · 김양수 · 김도연 · 이인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장현식 무죄 선고
광복을 맞아 이들은 모두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일제에 빼앗겨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사전의 원고도 발견되었습니다. 1947년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이 출판되었고, 오랜 어려움 끝에 1957년 제6권이 출판되며 완간되었습니다.
대일항쟁기에 큰 고난을 이겨내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말글을 지켜낸 조선어학회는 위대한 한국 독립운동 역사입니다.
여러분도 위대한 조선어학회의 꿈을 이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지구촌을 변화시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