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
If you want to live comfortably, turn a blind eye to injustice!
But if you want to live like a human being, challenge it!

김학철의 문학 활동은 1980년대 후반부터 소개되었는데, 특유의 강건한 문체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삶의 진정성을 간과하지 않는 날카로움을 통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본명은 홍성걸, 조선의용군 출신 독립운동가로 8.15 광복 후에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 활동을 합니다.

함경남도 원산(元山) 출생, 원산 공립 초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 보성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읽고 반일 사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 원산 총파업과 광주 학생 운동을 겪으며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고, ‘윤봉길 의거’에 감명을 받고 1935년 임시정부 찾아 상해로 떠났습니다.

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1년을 앞당겨서 호북성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합니다.

중-일 전쟁 우한 전투에서 중국군의 패배 이후 공산당 팔로군 산하 조선의용군(의용대에서 분리)에 들어가 중국 동북지역에서 독립전쟁 활동을 합니다.

1938년 약산 김원봉 장군이 조직한 조선의용대에 가담해서 분대장으로 활약합니다.

1941년 발발한 호가장 전투에서 총상 입고 전쟁포로로 잡혔고 정치범으로 10년형을 받고 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이후, 전향서(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바꾸겠다는 서약)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상입은 다리를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다리를 절단하게 됩니다.

해방 이후 조선독립연맹 서울시위원회 위원으로 정치활동을 하지만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월북, 평양 『로동신문』 에서 기자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김일성 체제에 반감을 드러내며 한국전쟁 공방전 기간중인 1952년 연변으로 이주, 정착합니다.

중국에서도 김학철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인민들이 굶어 죽는데 웬 우상숭배냐?” 라는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20세기의 신화> 를 집필하며 ‘반혁명작가’ 로 10년 간 옥살이를 했고 24년간 강제노역을 합니다.

1980년 복권을 하게 되고 <해란강아 말하라>, <격정 시대>, <20세기의 신화> 등 타계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2001년 건강이 악화되자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연변으로 돌아가 9월 25일에 별세했습니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조선의용대 출신 독립 운동가였고, 일명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 으로 불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