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대중아 궐기하자!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확립시켜라!”

김기권은 1910년 9월 11일 광주에서 태어나, 16살이던 1926년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고보) 재학 중에 모교와 광주농업고등학교 학생 15명과 함께 항일학생운동단체인 성진회를 조직했습니다.

성진회 회원들은 매월 10전의 회비를 내고, 1, 3주 토요일에 모여 독립을 위한 연구와 토의를 하고, 동지를 포섭해 조직을 확대하고, 비밀을 엄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듬해 성진회는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여 해산하였지만, 회원들은 각 학교에서 항일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김기권은 1928년 6월 광주고보 학생 이경채의 퇴학에 항의하는 동맹휴교를 이끌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하였지만 굴하지 않고, 7월에 동맹휴교 중앙본부를 설치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격문을 발송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소 뒤 그는 광주 지역 학생들의 독립운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광주 금남로에 문방구점을 열었습니다. 광주 지역의 학생독립운동가들은 김기권의 문방구점에서 연락과 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민족차별에 대한 분노가 광주지역 학생들에 의해 터져 나와 전국적으로 확산한 항일운동입니다. 1930년 3월까지 전개되었고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전국 320개 학교 참가 (서울 · 경기 지역 56, 충청 지역 23, 전라 지역 41, 강원 · 황해 지역 11, 평안 · 함경 지역 117, 간도 지역 32교 등)

학생독립운동가 김기권은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여 일경에 체포되었습니다.
모진 고문을 당하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조국 독립의 꿈을 지켰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향한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제 여러분이 학생독립운동가 김기권의 꿈을 이어,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