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동포는 결사 투쟁하자.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조선 민중아, 우리들은 철천지 원수인 자본제국주의 일본에 2천만 동포는 결사 투쟁하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라고 기재한 문서를 협력 인쇄하여 국장 당일 봉송 도열 안으로 오전 8시 30분을 기하여 일제히 그 문서를 살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라고 선동하였다.-1926년, 김재문에 대한 판결문
김재문은 1907년 4월 16일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나, 19살이었던 1926년 서울 중동학교 특과 3학년 재학 중에 6.10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학생독립운동가입니다.
6.10만세운동은 대한제국 황제 순종의 장례일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입니다. 순종이 승하하자 일제는 7천여 명의 군대를 서울에 집결시키고 삼엄하게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를 뚫고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5월 29일, 김재문은 자신의 하숙방에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인 박용규, 이동환, 곽대형, 황정환과 모여 격문을 작성하였고, 5,000매를 인쇄하여 각기 1,000매씩 나누어 갖고 학생들에게 몰래 배부했습니다. 그리고 거사 당일인 6월 10일에 동묘 부근에서 격문을 뿌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었습니다.
김재문은 학생 주동자 10명과 함께 1926년 11월 17일에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상소를 제기하여 1927년 4월 1일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6.10만세운동으로 체포된 학생수는 서울 210여 명, 전국 1,000여 명에 이릅니다. 6.10만세운동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로 더 이상 확산하지는 못하였지만,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한 항일운동으로, 공고해진 일제의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향한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제 여러분이 학생독립운동가 김재문의 꿈을 이어,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