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소앙은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허오리다.
우리 동포로 하야금 자유민이 되게 허오리다.

우리 민주독립을 성공허리다.
아히마다 대학을 졸업하게 허오리다.
어른마다 투표하야 정치성 권리를 갖게 허오리다.
사람마다 우유 한 병씩 먹고 집 한 채씩 가지고 살게 허오리다.
우리 조국을 광복허오리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나의 몸을 불에 태워 죽이어 주시오.
대한독립만세! 임시정부만세!
-1946년 제27회 3.1절 기념사 중-

조소앙 (趙素昻, 본명 조용은 趙鏞殷) 선생은 1887년 4월 9일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능산리인 경기도 교하군에서 6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인 조성룡으로부터 한학을 수학하고, 맏형인 조용하로부터 독립협회의 취지와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외국 문물에 대한 지식에 눈을 뜨게 됩니다.

1902년 열여섯의 나이에 당시 조선의 최고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 최연소로 입학합니다. 재학중 그는 신채호 선생과 함께 친일파 관료들의 매국음모를 막고 일본에 대한 황무지 개척권 양도에 반대하여 성토문을 작성합니다.

1904년 성균관을 졸업한 뒤 그는 일본 황실 특파 유학생 (대한제국 시기에 신교육의 명목으로 수학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나라가 대신 지불한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부립제1중학에 입학합니다.

재학중이던 1905년 11월,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하여 동맹휴교를 결의하고 항의집회를 개최합니다. 그 다음 달에는 제1중학교장이 일제의 한국침략의 필연성을 말하며 한국인 유학생들을 비하하자 이를 반박하기도 하였습니다.

1906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 단체인 대한공수회(大韓共修會)를 조직, 회보 『공수학보(共修學報)』를 발간하고 주필로써 활동합니다.

1908년 일본의 명문 사립대학 중 하나인 메이지대학 법학부에 입학, 이듬해에는 도쿄에 있는 각 유학생 단체를 통합한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를 창립하고 회보 『대한흥학회보(大韓興學會報)』의 주필로써 활동합니다.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의 명의로 발표된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기초하였습니다. 이는 합방조약의 무효와 황제의 주권 포기, 국민주권의 원칙 등을 천명하고, 대한제국의 법통을 계승하되 국민주권주의에 의거한 임시정부 수립에의 원칙을 제시하였다는 데 그 역사적 의의가 존재합니다.

1919년 2월, 만주 길림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지역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김교헌·안창호·신규식 등 독립운동가 39명의 명의로 발표하였습니다.

같은 해 4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 참여하며 민주공화제헌법의 기초를 포함한 임시정부의 정체 확립 및 대외 홍보 활동을 전개합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도 맡으셨습니다.

1919년 5월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한 김규식 선생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 뒤, 1920년대에는 각국 정부 요인들을 만나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이를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는 활동을 이어 나갑니다.

1930년 이동녕·이시영·안창호·김구 선생과 함께 민족주의 정당인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고, 이때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의거한 정강과 정책을 확립합니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

1941년 11월에는 민족독립을 앞두고 건국원칙을 제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간이 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김구, 이시영 선생 등과 함께 발표합니다.

그 이후에는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부위원장 (1945.12), 국민회의 의장 (1947-48), 사회당 위원장 (1948.12), 제2대 총선거 당선 (1950.5) 등 정치 활동을 이어 나가다 6.25전쟁 발발 후인 1950년 9월, 북한에 의해 강제 납북됩니다.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在北平和統一促進協議會)를 조직, 최고위원으로서 민족의 통일을 위한 활동을 전개합니다.

1958년 9월, 북한 정부에 의해 간첩 혐의자로 몰려 투옥, 이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이어가다 1958년 9월 10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서거하셨습니다.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정의로운 사회, 민족과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며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한 조소앙 선생!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조소앙이 되어 정치가 조소앙 선생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