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의 40년을 깎아 20살의 청년이 되어 다시 조국의 일터에 몸을 바치려 한다!
I hereby proclaim that I will cut 40 years from my age and become 20 years old again to fight for my country!

“일거리 많은 조선에 태어난 것은 더 없는 천행이지만 일터에 알맞은 일꾼이 되지 못하니 부끄러울 뿐이다.……다만 내가 부끄럽지 않은 것은 60평생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을 가려 내가 맡은 공사(公事) 를 저버린 적은 없다. 이것이 나의 신조요, 기운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 나이의 40년을 깎아 20당년의 청년으로서 다시금 조선의 일터에 몸을 바치려 한다.” –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의 회갑연 답사

1934년 9월 평양의 각계 유지 150여 명이 모여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의 회갑연을 열었습니다. 평양 유지들이 회갑연을 개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성계 인사로는 조신성이 처음이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은 187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불행하게도 22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그녀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기독교를 믿고 교육을 받게 되면서 조신성이 여성과 민족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된것입니다. 이후 그녀는 24살에 서울에 와서 이화학당과 교원양성소에서 공부하고 소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28살부터는 6년 동안 이화학당 사감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최초의 조선부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도산 안창호 등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교류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1910년에는 평양 진명여학교의 교장직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1920년 11월에는 평안남도 맹산 일대에서 독립투쟁을 벌였던 대한독립청년단(일명 맹산독립단)에서 가담해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옥고를 치르고 1923년 6월에야 풀려났습니다. 이후 항일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 평양 지회의 회장으로서 여성운동을 이끄는 한편 가난한 아동을 위해 학교를 설립 하고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은 한 평생을 이 땅의 여성과 아동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며 흔들림 없는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의 꿈이 우리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조신성이 되어 그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조신성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