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40년, 연희 전문학교 기숙사였다
그는 나를 아우처럼 귀여워해 주었고, 나는 그를 형처럼 따랐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中
경상남도 남해 출생,
호 백영(白影)은 윤동주 시인의 시 <흰 그림자>에서 따왔고 그 고결한 정신을 따르고자 한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1966년에 2,376수의 시조작품을 모아 주석을 달고 해제를 붙인 <시조문학사전> 편저,
1972년에 <구운몽> 번역 등을 통하여 고전의 문헌적 연구에 귀감을 보였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프랑스의 콜레지 드 프랑스의 초빙교수로서 한국 고전시가와 문학에 대한 논문발표 및 강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문학’ 항목 집필, 미국·프랑스·일본 등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하여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와 선양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특히나, 판소리 학회를 창립해서 브리태니커와 함께 판소리 감상회를 여러 차례 개최할 정도로 우리 전통에 대한 애정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감상회들을 통해 소리의 개념구성 · 형태분류 · 기교 · 발성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구를 통하여 판소리의 진가를 널리 인식시켰습니다.
1940년 정병욱은 윤동주(1917~1945)를 연희전문대에서 만나 하숙방에서 지내며 둘도 없는 글벗이 됩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을 졸업하면서 1941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였습니다.
윤동주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이 원고를 자필로 세 부를 만들어, 한 권은 이양하 선생(당시 연희전문대 은사)에게 다른 한 부는 정병욱에게 주었을 정도로 정병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이후 정병욱은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당해 가면서 어머니에게 잘 보관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마룻바닥을 뜯고 쌀독에 이 원고를 보관하였고 광복 후 1948년에 간행되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문학을 사랑한 학자, 백영 정병욱.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정병욱이 되어 그가 꿈 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글쓴이: 정유남 청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