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피를 흘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절대적인 독립을 얻기 위해서이다.

Koreans are spilling blood to gain absolute independence of Koreans for Koreans by Koreans.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한 열망과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져왔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는 무장투쟁과 같은 방식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전세계가 알 수 있도록 알리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황기환 선생님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등,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가 한창 뜨거워지던 시기, 1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유럽전선에 참전하여 미국 병사들을 구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종전 후에는 프랑스 파리에 남아 김규식 선생님의 제안을 통해 임시정부의 한국대표부 서기장으로 외교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고,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일제의 강제침탈을 전세계에 여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비록,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문제를 상정시키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나 <한국의 독립과 평화>라는 프랑스어 책자를 간행하고, <자유한국 La Coree Libre>이라는 월간지를 발간하며 선전활동을 지속하셨습니다.

이후에는 임시정부 런던위원부 위원으로 임명되어 한국의 독립문제를 영국의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역할과 더불어 한국독립후원단체를 결성하려 노력하셨습니다. 그 결과 영국의 국회의원 17명을 포함한 영국인사 62명으로 구성된 ‘대영제국한국친우회’가 결성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1921년 6월 12일, 황기환 선생님은 영국에서 개최된 대영제국 식민지수상회의에 참석한 수상들에게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조선 사람의 청원(The Appeal of the Korean People for Liberation from Japan)’이라고 칭한 인쇄물을 배부하는 동시에 이것을 일본대사 하야시 곤스케에게도 보내는 등, 일본과의 직접적인 외교대응에도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후에도 대유럽 외교에 일생을 다 바치셨으며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외교선전활동을 이어가다 1923년, 심장병으로 서거하셨습니다.

“한국인이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주장하는 자치나 개혁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본 행정의 철수, 일본이 강탈한 권한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이양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피를 흘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절대적인 독립을 얻기 위해서이고, 한국인들을 일본정부가 한국에 도입하려는 개혁은 무엇이든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한국이 독립하고 양국 사이에 좋은 이웃관계가 수립되는 것이다.”

 

이역만리 타국에 적을 두고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대외적인 외교와 홍보에 힘쓰셨던 외교관 황기환. 순국 10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대전 현충원에 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황기환이 되어 외교관 황기환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