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Until the very end, until the final hour, Proclaim our people’s rightful will of power

<독립선언서 공약삼장>中

현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박철마을에서 출생

만해 한용운은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승려입니다. 그러나 시인, 독립운동가, 불교개혁가, 혁명가, 사회운동가 등 다양하게 불리기도 합니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하고 불교계에서도 조선의 사찰을 일본 예속 하에 두려는 움직임으로 보였습니다. 항일 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민족종교 말살정책을 막기 위한 포교활동을 합니다.

1918년 어려운 불교를 대중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팔만대장경의 핵심 부분만 뽑아내어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유심>이라는 불교 잡지를 발간하여 글로써 민족 의식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선언하고 자진 체포되었습니다.

1919년 3월11일 일본인 검사는 심문을 끝내면서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라고 물었다. 이에 “그렇다. 계속해서 어디 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다” 라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1919년 7월, 서대문형무소에서 한용운은 검사의 심문에 따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장편의 논설을 썼고 다음과 같이 4가지 주장을 펼칩니다:

민족 자결의 원칙은 정의이며 인류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근원이기에 간섭 받지 않고 독립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공언
조선 독립 선언의 동기에서 민족의 실력, 세계 대세의 변천, 민족 자결 조건에 대해 역사적 현실성과 미래의 이상을 분석
침략주의 군국 일본의 야심을 폭로하고 조선 독립은 신성한 의무라고 천명
조선의 독립 국가의 필수요소인 토지, 백성, 문화가 구비된 당당한 독립국임을 인식

이 논설은 1919년 11월4일 상해에서 발간되던 『독립신문』에 실렸습니다.

3년을 복역한 뒤 출소하고 1923년에 ‘조선물산장려운동’ 을 적극 주도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서 경제의 힘을 기르자고 주장했습니다.

1927년 1월에 신간회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6월에 신간회 경성지회장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의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 민중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님의 침묵>

시 전편이 ‘이별-갈등-희망-만남’이라는 구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님을 이별한 시대는 바로 침묵의 시대, 상실의 시대인 것이며 언젠가 맞이하게 되는 만남의 시간은 바로 참된 낙원 회복의 시대, 광복의 시대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점에서 한용운의 시는 기다림의 시 또는 희망의 시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만해 한용운.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한용운이 되어 그가 꿈 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