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의 것만 쓸데없이 흉내내지 말 것이다.
<봄 잔디밭 위에> 머리말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스어 dia- (~너머) & -spero (씨를 뿌리다) 합성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의미

1914년 다니던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반일애국운동을 위해 북경사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둘째형의 만류와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919년 3.1운동에 연관되어 투옥되고 그 이듬해 출소하고 나서 도쿄 소재 대학 철학부에 입학을 했습니다.

1921년 조선 최초의 희곡집 <김영일의 사(金英一의 死)> 발표,

1924년 『시대일보』 기자로 입사, 최초의 창작 시집<봄 잔디밭 위에> 간행,

1925년 카프(KAPF)가 창설되자 창립 위원으로 참가하고 이듬해 <R군에게> 등 발표하고 강제 이주한 가혹한 현실을 담은 <농촌사람들> 등 발표합니다.

1927년 7월 소설 <낙동강> 발표,

… 천년을 산 만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하늘가에 간들

꿈에나 잊을쏘냐

잊힐쏘냐 에-헤-야

<낙동강> 서두에 삽입된 민요 中

1928년 소련으로 망명했고, 망명 첫 해에 저항시 <짓밟힌 고려> 를 발표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낙심치 않는다. 우리의 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뼈만 남은 주먹에는 원수를 쳐 꺼꾸러뜨리려는 거룩한 싸움의 힘이 숨어있음을 믿기 때문에,

옳도다, 다만 이 싸움이 있을 뿐이다 …

<짓밟힌 고려> 구절 中

1934년 소련 작가동맹원에 가입, 『선봉신문』 문학 편집자로 활동,

1935년 하바로브스크로 와서 조선사범대학 교수로 일하며 후학 양성하는데 힘썼습니다.

1937년 스탈린 정부 시절 (당시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실시), 일본에 간첩 행위를 한다는 누명을 쓰고 ‘인민의 적’ 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되었습니다.

1938년 4월 15일 사형언도 받고, 5월 11일 총살을 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포석 조명희 선생은 죽을 때까지 조선 문학에 대한 사랑이 가득합니다.

대한민국 첫 망명 작가인 독립운동가 포석 조명희.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조명희가 되어 그가 꿈 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