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에서 내 나라말로 내 나라 학생에게 노래를 가르친 것이 무슨 죄냐!
How can it be a sin to teach our students to sing in our language in our country?

한국 최초 여성 교육감이자 초대 제주도 교육감, 대한적십자사 제주도지사 부지사장 등

최정숙 선생은 대일항쟁기 때부터 별세하실 때까지, 독립과 인권 신장을 위해 교육계와 의료계에 헌신하신 분이었습니다.

1902년 제주에서 출생, 1918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 경기여고) 사범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녀는 강평국, 고수선, 최은희 선생과 함께 경상여고보의 ‘비밀 서클’에 참여해 항일 의지를 다지고 독립운동을 계획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그녀는 경성여고보 사범과 학생 79명으로 조직된 비밀 서클, ‘소녀결사대’의 일원으로서, 3.1운동에 참여했으며 주모자로 분류돼 체포된 후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이 확정되기까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무지를 일깨우는 일이 나라를 찾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여성 교육, 민족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강평국 선생과 함께 제주에 ‘여수원’(女修園)이라는 여성의 문맹 퇴치 강습소를 개원했습니다. 이러한 여수원을 키워 명신학교를 설립해 다양한 연령대의 남·여학생들에게 무료로 교육했습니다.

고문으로 인해 부상입은 몸의 치료를 위해 서울에 다녀온 후엔 목포의 소화학교, 전주의 해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예술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봄바람’, ‘조국의 산하’라는 노래를 가르쳤는데, 민족 혼을 일깨우는 노래를 지도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잡혀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내 나라에서 내 나라말로 내 나라 학생에게 노래를 가르친 것이 무슨 죄냐!’

훗날 자신의 일생을 말하는 글에서 이러한 일제의 횡포에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1939년 치료라는 다른 방법으로 민족을 돕기 위해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43년 졸업 후 의사가 되었으며 1944년 제주로 돌아와 정화의원을 개원했습니다.

당시 제주는 일제의 군사기지로 사용되었고,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최정숙 선생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병든 조선인 징용자와 빈곤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지켜나갔습니다.

교육과 의료로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한 선각자 최정숙,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최정숙이 되어 최정숙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