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한울 (하늘)! 경성의 한울! 내가 몹시 그리워했는지 모르는 경성의 한울! 이 한울에 내 몸을 날리울 때 내 몸은 그저 심한 감격에 떨릴 뿐이었습니다.”

“The sky of Gyeongseong! The sky of Gyeongseong! The sky of Gyeongsong that I missed so much! When I flew myself into this sky, my body just trembled with great emotion.”

1921년 7월,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新)비행가 안창남 동경 소율(小栗)비행학교 조교수, 금년 이십 세의 조선 청년>

1920년대, 20대의 젊은 나이에 각종 비행 대회에서 거둔 우수한 성적으로 조국의 희망이 된 한 비행사가 있었습니다.

최초로 조선의 하늘을 난 비행사 안창남.

그는 1917년 9월 서울 용산에서 열린 한 미국인의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1918년 일본 오사카의 자동차학교 전수과에서 자동차 운전 과정을 이수한 뒤, 서울로 돌아와 운수업에 종사합니다.

1919년 8월부터 도쿄 아카바네 비행기 제작소에서 비행 조정을 배운 후, 1920년 8월에 도쿄 오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석 달 만에 졸업합니다.

그는 1921년 5월 일본 민간 비행사 시험에서 공동 1등으로 합격해 면허를 따고, 6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민간항공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합니다. 1922년 11월에는 도쿄-오사카 왕복 우편비행 시합에도 참가해 우수상을 수상하고 2등 비행사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그의 업적은 뛰어난 비행 실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새로운 직업인 비행사를 조선인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과 희망의 불씨가 꺼져갔던 조선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민족의 열망에 부응하듯 그는 1922년 12월 5일 서울에 도착합니다. 닷새 뒤인 12월 10일에는 고국 방문 비행으로 여의도 비행장에서 이륙해 서울 도심과 주요 궁궐의 상공을 비행한 뒤 다시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합니다.

당시 비행사는 여객이나 화물의 운송보다는 유람 비행, 전단지 살포 등으로 높은 소득과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조선인 학살이라는 일제의 만행을 목격한 그는 1924년 중국으로 망명해 중국 혁명을 매개로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로 하고, 1926년 여운형 선생의 권유로 항공중장과 산서비행학교장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비행사를 모집하기 시작합니다. 1928년에는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던 중국의 한 군사 조직에서 지휘하며 조선인 비행사들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썼습니다.

또한 중국 상하이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독립공명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항일 비행학교와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였습니다. 7만 5천명의 병력을 양성해 북쪽 지역으로부터 진격한 뒤, 중국으로 후퇴하면서 중국과 소련의 참전을 유도하여 일본군과 전투, 독립을 이루어 내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 4월 2일, 불과 29세의 푸른 나이에 비행 교육 훈련을 하던 중 비행기 엔진 문제로 추락해 순국하였습니다.

생전 그는 천도교청년회에서 조선인의 계몽을 위해 창간한 잡지 ’개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 경성이 아무리 작은 시가라 합시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도시라 합시다. 그러나 내 고국의 서울이 아닙니까. 우리의 도시가 아닙니까. 장차 크게 넓게 할 수 있는 우리의 도시, 또 그리할 사람이 움직이고 자라고 있는 이 경성. 그 하늘에 비행기가 날기는 결코 1,2차가 아니었을 것이나 그 비행은 우리에 대한 어떤 미로의 모욕, 아니면 어떤 자는 일종 위협의 의미를 뛴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 잘하나 못하나 우리가 기뻐하고 우리끼리가 반가워하는 중에 우리끼리의 한몸으로 내가 날을 수 있게 된 것을 나는 더할 수 없이 유쾌히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일본에서 비행할 때마다 기두를 서천으로 향하고 보이지도 않는 이 경성을 바라보고 오고 싶은 마음에 가슴을 뛰노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지웠는지 알지 못합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비행사 안창남.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안창남이 되어 비행사 안창남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