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여! 전국 방방곳곳에서 쾌활하고 용감하게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라
1919년 9월 2일, 서울역 광장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66세 백발의 노인이 폭탄을 던집니다. 이 거사는 실패했지만, 일본경찰관 1명 사망, 37명이 부상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이 일은 외신을 통해 보도되어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젊은이보다 대담하고 젊은 심장을 가진 이 노인을 통해, 3.1운동 이후 한국 청년들은 독립을 향한 위대한 꿈을 품고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백발의 독립운동가 이름은 강우규(1855. 7. 14 ~ 1920. 11. 29)입니다.
그는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 지배하자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합니다. 또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노인으로 구성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서 리더로 활동합니다.
그렇다면 강우규는 왜 식민지 조선 최고위직인 총독을 처단하려 했을까요? 2백만 한국인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린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제국주의는, 힘으로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꺾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식민지배 정책을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문화 통치란, 힘에 의한 지배는 조선인의 극렬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니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교육을 받아 고위직에서 일할 기회를 정책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우규는 일본의 문화 정책을 부정했습니다. 3.1운동으로 높아진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서서히 사라지게 하고 한국인들 중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하는 친일파를 적극적으로 키워 한국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분열시키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우규는 조선에 새로 부임하는 일본인 총독을 처단해 한국인을 일제의 정신적인 노예로 만드는 문화정책을 막고자 결심합니다. 이것이 66세 백발의 독립운동가가 품었던 위대한 꿈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강우규는 조선 청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마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한국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강우규가 되어 쾌활하고 용감하게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