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정의의 편에 서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인권을 지켜라!”
“Always stand on the side of justice, and protect the rights of the poor and disadvantaged!”
일제강점기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인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사람, 그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받은 일본인, 후세 다쓰지.
그는 1911년 조선의 의병운동을 다룬 논문〈조선독립운동에 대하여 경의를 표함>을 발표하여 일본 경찰의 취조를 받은 뒤부터 조선의 독립운동과 조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일본이 우월한 힘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한국인의 토지를 강탈하자, 조선인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하여 한국인을 변호,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습니다.
1919년 2월 8일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 청년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낭독한 후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당하자 이들의 무죄를 외치며 변호했습니다.
1923년 9월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약 10만 명이 희생되자 일본 정부는 국민적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괴소문을 유포하고, 이에 일본 군인과 경찰이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 6천6백여 명을 학살하는 비극을 저질렀습니다.
이때 그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인 학살을 막지 못한 참회의 글을 작성해 신문사에 알렸고, 한국인 학살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역사에 남겼습니다.
또한 1924년 일본 궁성 입구에 폭탄을 던진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지섭의 변호를 맡는 등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힌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법률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변호 활동을 하는 그를 탄압하기 위해 그의 변호사 자격을 3번이나 박탈했으며, 심지어 그를 구속하고 징역 2년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1925년에 한국에 큰 홍수가 나자 일본에서 한국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으며,
1945년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하자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작성해 한국을 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인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사람.
국적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정의의 편에 서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한국인의 인권을 지킨 위대한 변호사.
그는 일본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일본 사람의 인권이 소중하듯 한국 사람의 인권 또한 소중하다고 믿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일본에 있는 그의 고향엔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라고 기록된 그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변호사 후세 다쓰지.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후게 다쓰지가 되어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오직 정의의 편에 서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인권을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