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조선 땅엔 난초를 심지 않겠다!
I will not plant orchids in the Joseon land under the colony of Japanese Imperialism.
차강 박기정 선생은 일제에 대한 꼿꼿한 지조와 절개를 유지한 채, 그림과 글로 독립운동을 도운 분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리며 전국 한시백일장 휘호 경시 때 장원까지 했던 그는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의암 유인석의 의병부대에 합류해 영월·평창·정선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또한 유인석 장군이 평창의 대화, 봉평에서 의병을 모집할 때도 그가 앞장서서 활약했습니다.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엔 봉평에서 지내며 나라를 잃은 망국의 한을 서화작품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의미하는 사군자를 그리면서, ‘일제 식민지 치하의 조선 땅에는 난초를 심지 않겠다’라는 의미로 난의 뿌리를 노출시킨 노근란(露根蘭)을 그렸습니다.
‘동대문 밖에서는 박기정을 따를 사람이 없다’, ‘서화를 잘하여 세상 사람들이 명가라 했다.’
평가를 받는 등 글과 그림 실력이 매우 출중했던 박기정 선생은 자신의 서화작품을 팔아 임시정부에 보내고 김구·이승만·여운형 등 임시정부 인사들과 간찰(편지)을 주고받으며 독립운동을 도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평생 한복만을 입은 채, 일본인·친일인사 위주의 서화협회 참여 거부 후 독자적 활동 유지, 창씨개명 거부 등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왜놈들의 악령·마귀소굴을 뭐라고 바라보느냐?”라고 말하며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녹그릇 헌납을 강요한 일본 순사들에게 호통을 쳐 내쫓았다는 일화들을 통해 일제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령선인(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표현)으로 몰려 감시와 압박을 받으면서도, 박기정 선생은 작품 활동과 행동을 통해 ‘박달나무 방망이’같이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자 했던 꼿꼿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지조와 절개를 지킨 채 일제에 저항했던 서화가 박기정,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박기정이 되어 박기정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사진 및 생년월일 출처 : 차강박기정선양회>
*글쓴이: 강유미 청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