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자! ”
Let’s initiate a million-signature campaign for Korean independence!
1921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친우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친우회 창립총회에는 프랑스 상하원의원 9명, 인권연맹 회장, 소르본대학교 교수, 언론인 등 프랑스의 저명한 인사들이 회원으로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한국친우회에 참여하게 되었을까요? 이들 대부분은 루이 마랭 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친우회 회장인 마랭은 창립총회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자” 고 제안했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가 루이 마랭은 1901년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국을 여행했습니다. “한국은 극동의 프랑스이며, 한국민은 순수하고 친절하다” 라고 자신의 여행기에 감상평을 남겼으며, 귀국 후에도 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대한제국관련 논문을 7편이나 발표했습니다. 1905년 하원의원에 선출된 루이 마랭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한국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습니다. 일본과 독일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규탄하는 의회보고서를 11차례나 작성하였고, 3·1운동이 일어나자 의회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인권운동가 펠리시앙 로베르 샬레(Felicien Robert Challaye)를 한국에 파견했습니다. 샬레는 서울 등지에 두 달 남짓 머물면서 3·1운동을 탄압하는 일제를 고발했습니 다. “일본 군경은 해를 끼치지 않는 군중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하고 수많은 평화적인 한국인들을 죽였 다……일본의 친구였던 내가 이제부터 일본제국주의를 고발하고자 한다.”
또한 마랭은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파리위원회를 설치하자 위원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으 며, 1932년 윤봉길의사 의거 후 일제가 프랑스 조계지에서 한국인들을 대거 체포하자 이를 막기 위해 프랑스 외교채널에 여러 차례 강력한 서한을 보냈습니다. 프랑스 정치인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한 루이 마랭은 우리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루이 마랭이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루이 마랭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