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눈을 뜬 학생독립운동가들은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1919년 3.1운동의 학생독립운동가들은 총과 칼로 시위대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일제의 폭력 앞에서 맨 앞줄에 서서 용감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3.1운동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가인 유관순은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고,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녀는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18세의 나이에 순국하였지만,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입니다.”-유관순
1926년 6.10만세운동의 학생독립운동가들은 공고해진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다시 독립의 꿈을 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6.10만세운동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일을 기해 학생독립운동가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입니다. 순종의 장례 행렬이 종로3가 단성사를 통과하자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격문과 태극기를 뿌리며 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 서울에서 210여 명, 전국에서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습니다. 법정에 선 학생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의 꿈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자유를 절규하면 자유가 생긴다는 결심으로 거사에 임하였다.”-이선호
이후로 학생독립운동가들은 더 적극적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했습니다. 학생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독립을 꿈꾸는 비밀결사들이 생겨났습니다.
*수원고등농림학교 건아단, 부산제2상업학교 흑조회, 보성고등보통학교 철권단, 대구고등보통학교 신우동맹, 광주농업학교&광주고등보통학교의 성진회,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 …
이후로 학생독립운동가들은 더 조직적으로 동맹휴학을 전개했습니다.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에 동맹휴학으로 맞섰습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1927),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1927), 중앙고등보통학교(1923, 1927), 경신학교, 배재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경성여자상업학교, 함흥농업학교(1927), 오산고등보통학교(1927), 전주고등보통학교(1926), 대구고등보통학교(1926,1928), 부산제2상업학교(1928), 진주고등보통학교&진주농업학교(1928), 보통학교(1921~1928) 다수…
그리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에 대한 분노가 광주지역 학생들에 의해 터져 나와 전국적으로 확산한 항일운동으로, 1930년 3월까지 전개되었습니다.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확립하자
식민지 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자
언론,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를 획득하자
-광주학생항일운동 격문
광주학생항일운동은 3.1운동 이후 가장 큰 항일운동으로 기록됩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학생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전국 320개 학교 참가 (서울 · 경기 지역 56교, 충청 지역 23교, 전라 지역 41교, 강원 · 황해 지역 11교, 평안 · 함경 지역 117교, 간도 지역 32교 등)
대일항쟁기 학생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주인공이 되어 독립의 꿈을 품고 새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학생독립운동가가 되어
100년 전 학생독립운동가들의 꿈을 이어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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