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의 안사람들도 의병을 할 것이다!
We wives should also join the righteous army for independence!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
내집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질 하여보세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찾기 운동이요
왜놈들을 잡는거니 의복버선 손질하여 만져주세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고 아늑하게 만져주세
우리조선 아낙네들 나라없이 어이살며
힘을모아 도와주세 만세만세 만만세요 우리의병 만세로다
–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 ‘안사람 의병가’

여성독립운동가 윤희순은 16살에 혼인하여 강원도 춘천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구한말 춘천의병을 이끈 유홍석으로 윤희순은 자연스럽게 시아버지를 따라 의병들의 음식과 의복을 조달 하며 의병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지역 여성 30여 명을 모아 ‘여성의병대’를 조직하고 의병들의 취사와 세탁을 전담하는 것은 물론 군자금을 모아 탄약을 제조하고, 남장을 하고 군사정 보를 수집하고, 군사훈련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의병활동을 하였습니다. 1910년 8월 국권이 상실되자 국내 의병 활동이 어렵게 되었고 시아버지와 남편은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윤희순도 이듬해 이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노학당’이라는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운동가들을 양성했습니다. 이후 조선독립단을 설립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였고, 1935 년 75살의 생을 마칠 때까지 40년간의 항일운동을 지속하였습니다.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가 외에도 여러 편의 의병가와 격문을 지었습니다. 일본군과 그들의 앞잡이를 꾸짖는 그녀의 격문은 투박하지만 당당함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자신의 글 말미에 항상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당당히 적었습니다. “우리 조선의 안사람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아느냐? 우리 안사람도 의병을 할 것이다……이 마적떼 오랑캐야. 좋은 말로 할 때 용서를 빌고 가거라. 이 오랑캐야. 대장놈들 아.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 조선 선비의 아내 윤희순

여성독립운동가 윤희순의 꿈이 우리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되어 그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윤희순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