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을 이끈 한국인들을 기억하라!”
“Remember the Koreans who led the 1919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찰칵! 찰칵! 찰칵!”,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기독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푸른 눈의 외국인 한 사람이 서울 곳곳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총과 칼 앞에 “대한 독립 만세”를 당당하게 외친 수많은 이들의 위대한 함성과 모습이, 그에 의해 세계 역사에 진실로 기록됩니다.

그는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1919년 4월 15일에 자행된 일본군의 ‘제암리 주민 집단 학살 만행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억울한 죽음을 보고서로 기록해 중국 등의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립니다. 이보다 열흘 정도 앞서 발생한 일본군의 ‘수촌리 방화 사건’ 역시 그의 사진과 보고서가 미국의 기관지에 실려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 외국인의 이름은 바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 그의 한국 이름은 석호필(石虎弼)입니다.

그는 1916년 기독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후 3.1운동 견문록을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 관련 보고서인 <끌 수 없는 불꽃>을 저술해서, 전 세계에 일본제국주의를 고발하고 한국인의 위대한 독립운동을 격려했습니다. 100년 전 그가 찍은 사진과 보고서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은폐되고 축소될뻔했던 찬란한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가 세계인들에게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전, 국내 한 언론사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향한 자신의 꿈을 기고했습니다.

” ‘1919년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시오.’ 이 몇 마디는 내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는 한국을 조국처럼 여기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하였고, 외국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