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교육가! 김마리아의 꿈2018-11-08T16:14:05+00:00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는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1명의 청년 대표 중 왜 여성이 없을까?”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재일 유학생이 발표한 독립선언에 참가한 한 여성은,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청년 대표 11명 중 여성이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훗날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성장합니다. 그가 바로 자신은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며 독립운동에 힘쓴 김마리아(1892. 6. 18 ~ 1944. 3. 13)입니다.

그는 1918년 일본 도쿄 유학생 독립단에 참여해 2.8독립선언에 참가한 후, 한국에 돌아와 전국적으로 여성들의 3.1운동 참여를 독려하다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전국 15개 지부 2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한 김마리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에 앞장섭니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 최초의 여성 대의원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1928년 미국 유학 중인 여학생들과 ‘재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며 미국인들에게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고발합니다. 그녀는 미국 한인동포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될 때까지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진정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연설하고 미주 한인동포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며 리더십을 지도해 나갑니다.

김마리아는 1933년 한국에 귀국해서도 신사참배 거부를 주도하며, 독립의 꿈을 청년들에게 심어주는 독립운동과 교육활동에 전념합니다. 조국의 독립에 평생을 헌신한 그녀는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에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마리아가 되어 교육가 김마리아가 꿈꾸었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리더십을 키우며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성취해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