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업가! 김익주의 꿈2018-11-08T12:11:41+00:00

‘애니깽’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애니깽은 선인장을 의미하는 말로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를 칭하는 표현입니다. 1905년 1,033명의 한국인이 ‘지상낙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멕시코로 떠났지만 멕시코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지상낙원이 아니라 선인장의 일종인 애니깽 재배 농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예와 같은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에 힘을 보태고자 돈을 모아 독립 자금을 후원하였습니다.

1905년 32세의 나이로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이주한 김익주(1873 ~ 1955) 또한 애니깽 재배 농장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김익주는 농장에서 나와 식당과 회사를 경영해 사업가로 큰 돈을 벌었고, 번 돈 대부분을 독립운동 자금에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멕시코 한인 지도자로 활동하며 3.1 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 한인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하나로 결집하는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습니
다. 1920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1,500달러의 거금을 독립운동에 지원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와 사업 등 전 재산을 처분해 미국의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와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후원하였습니다. 김익주는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보낸 뒤 정작 자신과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1955년 8월 11일 81세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한 김익주. 그리고 멕시코 애니깽 재배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번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후원한 수많은 무명의 멕시코 한인 동포들. 조국의 독립을 향한 이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100년 전 멕시코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 후손들은 지금도 멕시코에서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21세기 김익주가 되어, 김익주가 꿈꾼 세계 속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