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1919년 1월 27일 고종의 승하 소식을 들은 수원예기조합 소속의 기생 김향화는 20여 명의 동료 기생 들과 함께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소복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은 이들은 대한문에 도착해 다른 백성들과 함께 엎드려 곡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멸시받던 기생들이었지만 이들 역시 일제에 나라를 잃은 대한의 백성이었습니다.

김향화는 수원에서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끈 여성독립운동가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 3·1만세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수원에서도 3월 16일 만세운 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김향화는 선배 기생인 서도홍을 찾아가 만세시위를 함께 결의하고 수원지역의 기생 30여 명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29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만들고 준비를 했습니다. 29일은 수원 기생들이 화성행궁의 봉수당에 세워진 자혜병원으로 성병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습 니다. 당시 검사는 진료실도 아닌 병원 마당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매우 강압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거사일 오전 11시 30분경 김향화와 기생들은 자혜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 앞에 다다르자 이들은 치마폭에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김향화가 먼저 만세를 외치자 다른 기생들도 일제히 만세를 외쳤습니다. 일본 경찰들은 총과 칼을 들고 위협했지만 이들은 계속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도 만세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김향화는 2개월간 감금되어 고문을 당하 였고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항일 운동인 3·1운동에는 수원을 비롯한 안성, 진주, 해주, 통영 지역의 기생들도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14명은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천시 받았던 기생들이었지만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 당당히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김향화의 꿈이 우리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김향화가 되어 그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김향화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