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1919년 3월 개성에서 한 여학생이 가죽 가방을 들고 고향인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개성역에서 열차를 타고 원산에 도착한 뒤, 다시 배를 타고 강원도 대포항에 도착했습니다. 대포항에는 일본 경찰 들의 검열과 감시가 삼엄했습니다. 그녀도 소지품을 수색 당하고 심문을 받았지만 무사히 풀려났습 니다. 그리고 다행히 자신의 가죽 가방 안 버선목 솜 사이에 몰래 감춰온 3·1독립선언서도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개성에서 3·1독립선언서를 양양으로 가져와 강원도지역에 3·1만세운동의 불을 지 핀이는 바로 여성독 립운동가 조화벽입니다. 조화벽은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개성 호수돈여학교를 다니며 호수돈 비밀결 사대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호수돈 비밀결사대는 교사와 학생들로 구성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였 는데 개성의 3·1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일제가 휴교령을 내리자 조화벽은 직접 필사한 3·1독립선 언서를 숨겨서 양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녀가 목숨 걸고 가져온 독립선언서는 지역 청년들에게 전달 되었고 조화벽은 청년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준비하여 4월 4일 양양 3·1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양양 만세운동은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일뿐만 아니라 그 규모나 격렬함이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만세운동이었습니다.

조화벽은 신분을 숨기고 피신하였다가 개성 호수돈여학교로 다시 돌아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졸업 후에는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는데 그 곳에서 고아가 된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며 유관순의 오빠 독립운동가 유우석과 인연이 되어 1925년 혼인을 했습니다. 이후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 면서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전파하였으며, 1932년 고향인 양양으로 돌아와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헌신했습니다. 정명학원은 1944년 폐교할 때까지 6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조화벽의 꿈이 우리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조화벽이 되어 그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조화벽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