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피치)부인은 자기네 자동차에 나와 부부인 양 나란히 앉고 피치 선생은 운전사가 되어 뜰 내에서 차를 몰고 문 밖으로 나갔다” 1932년 5월 김구의 백범일지에는 삼엄한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변장을 하고 피치의 집을 떠나는 독립운동가 김구의 긴박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가 김구를 숨겨주고 탈출까지 도운 이 ‘피치’선생은 누구일까요?

조지 애쉬모어 피치는 중국에 파견된 미국인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1909 년에 중국 상해로 왔습니다. 그는 상해에서 망명한 한국인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는 피치가 한국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 직후 일제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와 요인들은 피신을 위해 피치의 집으로 찾아갔습니 다. 피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일경의 추격이 자신의 집으로까지 좁혀오자, 아내 제랄딘과 함께 김구를 탈출시켰습니다. 그는 또한 윤봉길의사 의거 직후 안창호가 프랑스 조계지에서 체포되자, 프랑스계 언론사에 서한을 보내고 석방운동에 나섰습니 다. 1937년 일본군이 중국 난징에서 대규모 학살을 저질렀을 때에는 난징에 있던 외국인들과 함께 일본군의 학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국제사회에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며 일본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피치의 독립운동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George Field Fitch) 목사 역시 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2대에 걸쳐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한 조지 애쉬모어 피치는 우리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조지 애쉬모어 피치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조지 애쉬모어 피치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