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아름다운 호수 ‘남호’가 흐르는 중국 남동부 절강성의 소도시 가흥 매만가 76호에 가면, 남호 호숫가에 자리잡은 잘 보존된 2층짜리 목조 가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 주변에서는 뜻 밖에도 한국독립운동가 ‘김구 피난처’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 김구는 어떻게이 곳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요?

1932년 4월 윤봉길의사가 중국 상해 홍구공원(노신공원)에서 폭탄 의거를 일으키자, 일제는 한국독 립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의거를 계획한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추적에 나섰습니다. 김구는 일제의 추적을 피해 미국인 선교사 피치의 집에 숨어있다가 피치 목사 부부의 도움으로 상해를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남동부 저장성 가흥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의 항일운동가 저보성이 자신의 고향인 가흥에 김구의 피난처를 제공했기 때문입 니다.

저보성은 가흥 출신의 명망가로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흥에 있는 자신의 수양 아들집 2층 다락방을 김구의 은신처로 정하고 집을 개조했습니다. 2층 김구의 방에서 주변을 잘 살펴볼수 있도록 작은 창을 여러 개 두었고, 한 쪽 마룻바닥에는 네모난 구멍을 뚫어 비상구를 마련했습니 다. 이 비상구는 평소에는 나무판자로 덮어두었다가 위급상황에는 이 통로를 이용해 빠르게 탈출하여 집 뒤편에 있는 배를 타고 벗어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일경의 추적이 가흥 시내에까지 좁혀 오자 그는 해염에 있는 며느리 집안의 별장으로 김구를 피신 시켰습니다. 저보성은 김구의 피신을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 며느리 등 자신의 온 가족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동녕, 김의한, 박찬익, 엄항섭 등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까지 피난처를 제공했습니다. 중국인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한 저보성은 우리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저보성이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저보성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