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촌을 계몽하여 일본제국주의에 맞서자!
Educate our farm communities to fight Japanese imperialism!
최용신은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일제에 맞섰던 여성독립운동가입니다.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이 강화되었던 우리 농촌은 무지와 가난으로 황폐했습니다. 최용신은 이러한 우리의 농촌을 계몽하여 발전시키는 것에 나라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1931년 10월 최용신은 YWCA 농촌지도원 자격으로 경기도 안산의 샘골로 갔습니다. 그녀는 제일 먼저 예배당을 빌려 한글을 비롯한 산술, 보건 및 농촌 생활에 필요한 상식과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무허가였던 강습소의 정식 인가를 신청하고 학생들이 늘어나자 교실 증축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즈음 그녀의 활동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최용신의 헌신적인 노력에 변화되어 그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샘골 주민들은 교실 증축을 위해 스스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토지를 기증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예배당에 딸린 작은 강습소는 ‘천곡학원’이라는 정식 교육기 관으로 발전했습니다. 최용신은 교육사업 외에도 농촌 발전을 위해 농가 부업, 위생 생활과 환경개선, 저축 장려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샘골이 기반을 잡아갈 즈음 최용신은 일본 유학을 결심합니다. 샘골을 더 발전시키려면 새로운 선진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유학 중 갑자기 병을 얻게 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샘골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최용신은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YWCA의 보조금이 중단되고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학원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과로로 쓰러져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최용신은 마지막까지 학교와 마을을 걱정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5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일제와 맞섰던 젊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애도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최용신의 꿈이 우리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최용신이 되어 그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최용신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