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꿈! 2017-09-06T09:55:01+00:00

위대한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꿈 (18750314~19480629)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변해 독립을 선언한다!”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한 외국인 부부의 아들이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들 브루스를 품에 안는 순간, 침대보 아래에 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급히 내려놓고선 종이에 써진 글을 읽어 내려갑니다.

“아니… 이… 이것은 독립선언서가 아닌가!”

그날 병원에서는 독립선언서가 인쇄되고 있었고 일본 경찰이 병원을 급습하자 병원의 간호사가 기지를 발휘해 산모의 침대보 밑에 독립선언서를 숨긴 것이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나와 병원을 빠져나온 후 그의 동생에게 이것을 숨겨 도쿄로 향하게 했습니다.

3.1운동을 최초로 외국에 알린 그의 이름은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로 UPA 통신(현 UPI 통신)의 서울 특파원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는 도쿄 주재 AP 통신사망을 통해 미국으로 전달되고, AP 통신의 서울 특파원으로 임명됩니다.

가족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용기 있는 결단으로 한국의 3.1운동은 전 세계에 열려지게 됩니다.

 

AP 통신은 “독립선언문에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기사를 내었고 뉴욕타임스는 AP 통신의 기사를 인용하여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운동이 널리 퍼져나갔고, 수천 명의 시위자가 체포되었다”며 이를 보도합니다.

이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프랑스의 ‘앙탕트’, 영국의 ‘모닝포스트’, 중국의 ‘민국일보’ 등 해외에 3.1운동 관련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그는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1919년 4월 15일에 자행된 일본군의 ‘제암리 학살 사건’을 취재하였으며 스코필드 박사, 언더우드 박사와 함께 민간인의 학살을 멈추라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항의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서울 종로에 집을 짓고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을 뜻하는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여 선교사, 사업가들과 함께 한국의 정세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또한 그는 3.1운동을 이끈 민족지도자들의 재판 과정을 취재하였고 한국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6개월 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이후 일본에 의해 한국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는 한국에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일제의 만행과 그 실상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해외에 알린 유일한 서양 언론인.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기자 앨버트 테일러.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앨버트 테일러가 되어 기자 앨버트 테일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변해 독립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