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나를 묻어 주시오. ”
When I die, please bury me next to my father in my beloved land of Korea.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는 오래된 2층짜리 붉은 벽돌 저택이 있습니다. 이 저택은 영국과 미국의 주택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벽돌을 쌓은 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 입니다. 이 집의 머릿돌에는 ‘DILKUSHA(딜쿠샤) 1923’라고 새겨져 있었지만 오랫동안 이 집의 연원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한 미국인이 한국에 거주했던 부모님의 집을 추적하면서 이 저택의 주인이 밝혀졌습니다.
힌디어로 ‘이상향, 기쁨’을 뜻하는 딜쿠샤의 주인은 미국인 사업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였습니다. 테일러는 1897년 아버지의 금광사업을 돕기 위해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와, 1917년 영국인 연극배우인 메리 테일러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테일러 부부는 1923 년에 착공된 딜쿠샤에서 1945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기 전까지 살았습니다. 딜쿠샤가 더 의미 있는 것은 집주인 테일러가 3·1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1919년 2월 28일 테일러의 부인 메리가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때 테일러는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진 3·1독립선언서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를 몰래 일본으로 보내어 미국으로 타전하였고, 이로써 3·1운동 소식이 처음으로 외신에 보도되었습니다. 이후로도 테일러는 제암리 학살 사건을 취재하고, 조선총독을 항의방문하는 등 한국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1941년 12 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테일러는 일제에 의해 감금되었고, 메리 역시 가택연금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듬해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광복 후 테일러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원했지만 미국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고, 자신의 유언에 따라 한국에 안장되었습니다. 미국인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한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는 우리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독립운동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